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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이만수 야구인생] 만수 바보

베트남 야구협회 이장형 지원단장이 보낸 편지

 

전국통합뉴스 이승주 기자 | 1982년 3월 27일. 동대문 야구장. 5회 MBC 유종겸 투수가 던진 공에 ‘딱’하는 소리와 함께 이만수 선수가 친 공이 담장을 넘었다.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서막을 알린 첫 홈런. 어린아이처럼 펄쩍펄쩍 뛰면서 그라운드를 돌던 그때의 이만수 선수는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코치로서 메이저리그의 우승을 경험하고 한국 프로야구 코치와 감독으로 부임했다는 소식까지 화려한 이만수 감독님의 프로필은 그저 영웅담처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이야기였다.

 

2007년 5월 26일. 만원 관중 앞에서 팬티를 입고 그라운드를 뛰는 이만수 당시 코치의 퍼포먼스는 일회성의 가십거리가 아닌 팬들과의 소통, 약속을 지켜낸 한국 프로야구사의 전환점이 되기에 충분한 퍼포먼스였다.(물론 이만수 감독님과 이 당시 이야기를 나누며 너무 부끄러웠지만 약속을 지켜야 된다는 신념이 크게 작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만수 감독님과의 첫 만남

2018년 10월. 라오스에서 국제야구대회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참가 신청이 가능한지 헐크파운데이션 관계자와 연락을 취했다. 지금껏 중고등학교 선수들이 참가한 적이 없어서 다소 당황한 상황이었지만 출전이 허락되었다.

 

2019년 1월. 드디어 하노이를 출발한 비행기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 도착했다. 그렇게 만나고 싶던 헐크 이만수 감독님이 직접 공항에 나와서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야구부를 맞이해 주셨다. 하나하나 우리 선수들을 안아 주시고 함께 데려간 내 아들을 번쩍번쩍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시며 반겨주셨다. 어리둥절했다. 꿈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모든 선수를 지켜보며 경기장을 떠나지 않는 이만수 감독님. 경기를 마치고 나면 항상 선수들을 다독거리며 아버지처럼 살갑게 그들을 안아 주는 인간적인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 저녁 바베큐 파티를 열어주시면서 손수 고기를 구워 선수들에게 일일이 전해주시는 모습에서 강한 파워를 가진 헐크가 아닌 사람 냄새 나는 감독님의 진정성을 느꼈다. 

 

무모한 고백

2017년 알루코배 베트남 주니어 야구대회가 2차례 개최되었다. 1회 대회에서 중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야구부가 대학교팀까지 연파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게 베트남 야구의 현실이자 수준이었다. 그리고 6개월 후에 개최된 2회 대회에서 하노이 국립대학팀은 완전히 다른 팀이 되어 있었다.

 

거의 콜드게임으로 결승전에서 패하고 그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1회 대회의 패배를 곱씹으며 맹훈련을 했다는 이야기에 뭔가 모르게 마음이 뭉클했다. 이때 선수들이 입을 모아 협회 창설, 베트남 야구 국가대표팀 창단, 국제대회 참가를 간절히 바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야구선수 출신이 아닌 내가 이들을 위해 과연 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없이 그러겠노라 답을 해 버린 것이다. 지금도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모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각설하고. 이후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라오스 야구에 주목했다. 라오스 대회에 참가하고 바베큐 파티에서 정말 그런 용기가 어떻게 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내 성격상 불가능한 고백을 스스럼없이 이만수 감독님께 이야기했다.

 

“감독님. 베트남 야구에도 관심을 가지시고 좀 도와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이만수 감독님의 알 수 없는 표정에서 이미 라오스 야구를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을 했고 베트남까지 아직 야구전파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질문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무모했다.

 

마지막 날. 라오J브라더스 센터에 들러 인사를 나누며 또 한 가지 무모한 제안을 감독님께 드렸다. 2019년 연말에 라오스 야구대표팀을 하노이로 초청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물론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이 대책 없고 어이없는 제안에 이만수 감독님께서 가능하다면 꼭 방문하시겠다는 답을 얻었다. 기쁨도 잠시 대책 수습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녀야만 했다. 

 

재회

감독님과 하노이에서의 첫 만남. 하노이 한국국제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Never Ever Give Up” 강연은 큰 감동을 주었다. 다음 날 이어진 베트남 하노이 연합팀과 라오스 국가대표팀과의 친선경기는 박빙의 상황으로 경기 초반 이어지다가 결국 라오스 대표팀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어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이만수 감독님께서 나를 불러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셨다. “저 하노이 선수들은 누구의 지도를 받고 있니?”라고 물었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우습지만 유투브를 통해 야구를 배우고 있습니다” 내 대답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전문적으로 코칭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냥 야구가 좋아서 즐기는 선수들이다. 내 대답에 이만수 감독님께서는 너털웃음을 보이시며 안타까움을 표하셨다. 귀국하는 날 아침 커피를 나누며 이만수 감독님께서 꽤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을 들려주셨다. 베트남 야구협회를 만들고 국가대표를 만드는 것에 도움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베트남 야구와 헐크의 동행

이만수 감독님과 시작된 베트남 야구의 동행은 코로나의 악재를 만나 꽤 긴 시간 답보된 상태로 흘러갔다. 하지만 이만수 감독님과 주고받은 SNS와 메일은 아마 수천 통이 족히 넘을 것 같다.

 

라오스 야구협회의 창설과 국가대표 구성의 과정을 베트남에 그대로 접목해서 협회 창설 준비를 위한 정관을 만들고 국가대표팀 구성을 위한 선발 과정 등을 매일매일 전해 들었다. 물론 라오스와 베트남은 분명 많이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야구 불모지에서의 야구에서의 야구전파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점도 꽤 많았다. 

 

낯선 외국인이 베트남 야구를 위해 이러한 일을 했다는 것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분명 제정신은 아니었음이 확실하다. 아마 정상적인 사고를 했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무작정 현재 베트남 야구협회장인 쩐득판(Tran Duc Phan) 회장에게 메일을 보내서 베트남 야구를 위해 꼭 만나고 싶다고 전하니 얼마나 황당했을지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이후 베트남 지인의 지인을 통해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판 회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웃었던 그 모습이 지금도 아찔하게 느껴진다.

 

사실 이만수 감독님이 베트남 야구에 도움을 주시지 않았다면 아마도 베트남 야구협회 창설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나 또한 중간에 포기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자기합리화를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본 이만수 감독님은 그런 분이셨다. 한 번 마음 먹은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시는 분이다. 

 

만수 바보

늘 헐크가 야구장을 누비던 그때 원정 경기가 있을 때 상대팀 관중석에서 늘 “만수 바보~만수 바보”가 들려왔다. 아마도 강타자였던 그의 기를 누르고자 하는 상대팀 관중들의 야유가 언젠가부터 그를 칭송하는 응원으로 바뀌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내가 아는 이만수 감독님은 바보가 맞다. 바보는 무모하다. 또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남을 해 하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홈런을 치면 엄청난 세러머니로 그라운드를 호령하던 프로야구의 레전드, 메이저리그의 우승팀 코치, 한국 프로야구의 감독. 이 화려한 수식어로 인해 너무나도 평범한 야구팬인 내가 이만수 감독님을 만난다는 것은 거의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나는 감히 지금 이만수 감독님을 평가하는 무례함을 범하고 있다. 

 

그러나 그냥 내가 겪은 이만수 감독님의 헐크가 아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그런 따뜻한 마음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 베트남 야구 일을 통해 사람에게 다치고 좌절을 겪고 있을 때, 거짓과 음해로 상처받고 있을 때 단 한 번도 나를 의심하지 않고 믿어주신 분이다.

 

또한 자신에게 하나도 득 될 것이 없는 이 무모한 도전을 즐거이 받아들이는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 지금을 되돌아볼 수 있는 때가 왔을 때 나는 그를 향해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할 것이다. 레전드로서의 존경이 아닌 인간 이만수에 대한 존경으로...  

 

베트남 야구협회 이장형 지원단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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