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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박기성 칼럼] 아빠 아버지!

대전주님의교회 담임목사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집에 온 아들, 그리고 우리 부부가 함께 거실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TV에서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이 재방송되고 있었습니다. 갯벌에서 낙지를 잡는 99세의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촬영하는 젊은 감독조차도 쉽게 따라다니지 못할 정도로 갯벌에서의 할아버지의 기력은 대단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맨 손으로 갯벌을 헤집으시더니 커다란 문어를 손에 쥐고 의기양양하게 촬영감독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말했습니다. “낙지는 왜 생김새가 저렇게 생겼을까?” 옆에 있던 아들이 검지 손가락을 위로 치켜 세우며 말했습니다. “그건 저 윗분에게 물어봐야죠.”

 

하긴 낙지의 생김새가 그 모양인 것이 낙지 잘못은 아니지요. 굳이 탓할 이를 찾아야 한다면 창조주이겠지요. 하지만 바울은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롬 9:20)고 말합니다.

 

한 덩이의 진흙으로 귀히 쓸 그릇을 만들지 아니면 천히 쓸 그릇을 만들지는 전적으로 토기장이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낙지가 그렇게 생긴 것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왕 만들어 주시려거든 예쁘게 만들어주실 것이지 말입니다. 

 

몇 달 전, 신문에서 오랑우탄 모자(母子)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엄마 오랑우탄이 태어난 지 2주 밖에 되지 않은 아기 오랑우탄을 품에 안고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내 눈에 아기 오랑우탄은 참 못생겨 보였습니다. 못 생겨도 그렇게도 못생겼을까요?

 

그럼에도 엄마 오랑우탄은 아기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기의 볼에 뽀뽀를 하며 왼손으로 아기를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못생겨도 어미의 눈에는 예쁘게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어미의 눈에는 ‘객관적’이라는 형용사(形容詞)가 무의미한 단어인 듯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는 내 것이라”(사 43:1)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비록 우리가 “왜 나를 이렇게 못나게 낳으셨어요”, “왜 나를 이렇게 만드셨어요”라고 감히 따질 수는 없을지 몰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습니다. 아무리 못났어도 우리가 당신의 자녀인 까닭에 예뻐해 주실 테니까요.

 

그래서 마음껏 불러봅니다. “아빠 아버지!”(갈 4:6) 그리고 또 불러봅니다. “아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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