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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박기성 칼럼]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대전주님의교회 담임목사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내가 사는 동네 골목의 어느 집 담벼락에 담쟁이가 달라붙어 있습니다. 거의 매일 이 골목을 지나야 하기에 자연스레 담쟁이를 보게 됩니다. 그렇게 푸르던 담쟁이 잎에 어느 덧 단풍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내 저 잎들도 하나 둘 덩굴로부터 떨어져 나갈 테지요.

 

6년 전, 체코 프라하 성의 사슴계속 맞은편에 있는 왕가의 정원 담벼락에서 본 담쟁이는 지금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도종환 님의 <담쟁이>를 떠올리며 담벼락의 담쟁이를 꽤 긴 시간 동안 바라보았었습니다.

 

도종환은 이 시에서 담쟁이를 절망의 벽을 타고 넘어가는 희망자(希望者)로 노래했습니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특별한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 담쟁이는 같은 영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오 헨리(O. Henry)도 자신의 단편 <마지막 잎새>에서 심한 폐렴으로 삶의 의지를 잃은 존시에게 희망을 준 소재로 담쟁이를 사용했습니다.

 

무명의 여류 화가 존시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담쟁이덩굴에서 잎이 다 떨어지면 자신의 생명도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바람이 몹시 세차게 불면서 담쟁이 잎이 다 떨어지고 마지막 잎새 하나만 남게 되었습니다.

 

존시는 마지막 남은 잎새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합니다. 그런데 다음날 밤에도 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그 마지막 잎새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세찬 바람에도 덩굴에 끝까지 남아있는 마지막 잎새를 보면서 존시는 기적적으로 기력을 회복합니다.

 

하지만 담벼락에 남아있는 마지막 잎새는 진짜 잎이 아닙니다. 이웃에 살고 있는 늙은 화가 베어먼이 그린 그림입니다. 존시는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며 기력을 되찾았지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밤새 세찬 바람을 맞으며 잎새를 그렸던 베어먼은 이틀 후 폐렴에 걸려 죽고 맙니다.

 

베어먼은 절망한 존시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의 걸작을 남기고 죽은 것입니다.

 

담쟁이는 홀로 설 수 없는 식물입니다. 무엇인가를 의지해야만 비로소 일어설 수 있습니다. 빨판처럼 생긴 뿌리의 끝이 나무나 돌담에 착 달라붙어 조금씩 조금씩 그것들을 타고 자랍니다.

 

이것을 도종환은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담쟁이의 꽃말이 ‘우정’ 또는 ‘공생’인가 봅니다. 

 

우리 교회가 담쟁이를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절망의 벽’처럼 느껴질지라도 서로가 함께 손을 잡고 한 뼘 한 뼘 올라가는 그런 담쟁이 말입니다.

 

언젠가는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는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리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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