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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칼럼] 추석명절 前,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나누고 섬기는 명절이 되기를 — 국민 모두가 행복한 명절을 準備하며

 

사랑하는 우리 민족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이 땅에 사는 모든 이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 다가오는 추석명절을 앞두고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무엇을 준비하고, 누구와 나누며, 어떤 마음으로 이 명절을 맞이할 것인가.’

풍성한 상차림과 차례상, 고향길의 행렬만으로 명절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명절은 이웃의 빈자리를 살피고, 헐벗고 굶주린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는 야고보서 2장 15–17절과 고린도후서 6장 10절의 말씀을 하나로 이어, 믿음의 본질과 삶의 방향을 다시 조명하고자 합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5–17)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후서 6:10)

 

겉으로는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는 듯하나, 깊이 들여다보면 하나의 복음적 진실을 가리킵니다. 참된 믿음(信仰)은 말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소유한 ‘모든 것’을 다른 이와 나누는 삶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1. 죽은 믿음과 산 믿음의 對照

야고보 사도는 ‘말만 하는 믿음’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헐벗고 굶주린 형제 앞에서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고 축복의 말을 하면서도, 정작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않는다면 그 말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 지점에서 자신의 삶을 증거합니다. 그는 실제로 가난했고, 근심했고, 세상적으로는 ‘아무 것도 없는 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가난 가운데서 복음을 통해 많은 사람을 영적으로 부요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의 가난은 자기 안위를 위한 가난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통로였습니다.

 

야고보가 경고한 ‘말만 하는 믿음’과 정반대로, 바울은 ‘가진 것이 없어도 나누는 믿음’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으로 그 가난함을 인하여 우리가 부요하게 되게 하셨다”(고린도후서 8:9)는 사실이, 바울의 삶에 그대로 재현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가 말하는 ‘행함(行)'은 단순한 선행의 목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모든 것을 소유한 자가, 그 풍성함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결과입니다. 믿음이 살아 있다면, 나눔은 억지로 하는 의무가 아니라 넘치는 기쁨의 표현이 됩니다.

 

2. 所有와 나눔의 逆說的 實在

성도의 삶은 보이는 현실과 보이지 않는 실재가 동시에 경험되는 자리입니다. 겉으로 보면 우리는 헐벗고 부족한 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미 “모든 것이 너희 것”(고린도전서 3:21–23)이라는 선언 아래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다”는 고백은 자기 비하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소유를 내려놓고 그리스도만 의지하는 믿음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부요하게 할 수 있습니다. 물질이 없어도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위로의 말을 전할 수 있으며, 함께 기도하고,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습니다.

 

야고보가 말한 ‘몸에 쓸 것’은 반드시 큰 물질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 순간에 우리가 가진 것—시간, 위로, 기도, 복음의 말씀, 작은 나눔—이 바로 ‘몸에 쓸 것’이 됩니다.

 

근심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쁨 안에 포함됩니다. 성령의 기쁨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할 수 있고, 그 기쁨으로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결국 야고보서 2장의 ‘행함’과 고린도후서 6장의 ‘역설’은 같은 영적 실재를 가리킵니다. 죽은 믿음은 말로만 축복하고, 산 믿음은 가진 것이 없어도 나누며, 그 나눔을 통해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합니다.

 

3. 추석명절을 앞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땅에 사는 모든 이웃 여러분,

 

오늘 우리의 현실이 어떠하든지—겉으로 보기에 근심스럽고, 가난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처럼 보일지라도—주님은 우리를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말만으로 “평안히 가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 순간에 여러분이 가진 작은 것이라도 나누십시오. 그것이 야고보가 말한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물질적으로 부족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복음과 기도와 사랑의 나눔을 통해 여러분은 이미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울이 살았던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삶입니다. 세상이 여러분을 어떻게 보든지, 주님 안에서는 이미 모든 것을 소유한 자로 담대히 서십시오.

 

그 담대함이 다른 사람에게 소망이 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역설이 우리 삶에 재현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근심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가난 가운데서도 나누며,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된 우리 정체성입니다.

 

추석 명절을 앞둔 지금,

우리는 단지 가족끼리의 풍성한 상차림만을 준비할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홀로 남은 어르신, 생계가 막막한 가정, 명절이 오히려 더 쓸쓸한 이들— 그들과 함께 나누고 섬기는 것이 진정한 명절의 시작입니다.

 

작은 쌀 한 포대, 따뜻한 음식 한 그릇, 진심 어린 방문과 기도— 그것이 바로 ‘몸에 쓸 것’이 되어, 죽은 믿음을 산 믿음으로 바꾸는 통로가 됩니다.

 

국민 모두가 행복한 명절을 맞이하려면, 먼저 나부터 ‘가진 것이 없어도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에 우리 민족이 회복해야 할 복음의 실천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마음과 삶에,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이웃에게 풍성히 임하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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