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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이태선 윤춘병 학술 세미나 성황리 개최

기조 강연을 맡은 고성은 교수, 서산 지역 기독교 역사 새롭게 재조명

 

전국통합뉴스 이인복 기자 | 충남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원장 안준호 목사)은 지난 7월 19일(금) 오전 10시 충남 서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충남도내 주요인사 및 서산시 기독교계 인사 등 3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충남기독교 유적 보존관리 및 관광벨트 조성을 위한 '제3회 이태선․ 윤춘병 학술 세미나'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충남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이 개최하고 서산시 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원장 이성원 장로)이 주관하여 1부 식전행사, 2부 개회식, 3부 학술 세미나 순으로 진행했다. 

 

'제3회 이태선․ 윤춘병 학술 세미나'는 충남기독교 유적 보존관리와 관광벨트 조성을 위해 기독교가 역사속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서산 지역에 목회자이면서 아동 문학가들인 이태선 ․ 윤춘병 아동문학관이 건립되기를 한 마음으로 염원하면서 뜻깊은 행사를 마쳤다. 

 

1부 식전행사에서는 CBA어린이합창단과 이완식 소프라노, 성연기독교합창단이 여름냇가, 눈, 꽃가지에 내리는, 어머님 은혜 등 두 시인의 동요들을 선보였으며 김희운 서산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 서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2부 개회식은 안준호 충남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장의 개회사, 이성원 서산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장의 환영사, 김태흠 충청남도 도지사, 이완섭 서산시장, 조동식 서산시의회 의장, 성일종 서산 태안 국회의원, 박귀환 충남기독교총연합회 총회장의 축사 등으로 진행되었다. 

 

이어 제3부로 최연범 충남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학술세미나는 기조강연으로 고성은 교수(한국교회인물연구소 소장)의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서의 개신교 전래수용 과정의 특색-서산을 중심으로’, 주제발표로 황미숙 교수(한국기독교역사연구회 학술위원)의 ‘이태선 목사의 문학 인생’와 송현강 교수(전 한국기독교역사학회장)의 ‘윤춘병 목사와 그의 시대‘가 발표되었다. 

 

 

주제 발표를 마친 후 윤용혁 공주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홍승표 교수(연세대학교 객원)와 김진형 박사(기독교대한감리회 원로목사)의 논찬을 비롯한 종합토론이 진행되었다. 
  
이날 기조 강연을 맡은 고성은 교수는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서 개신교 전래 수용과정의 특색 -서산을 중심으로-’라는 제하속에서 충청도 서해안에 자리한 서산이라는 지역이 초기 기독교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 어떤 특색이 있는지에 대하여 기독교 선교의 최초 접촉지였던 충청도 서해안, 자생적인 신앙공동체로 시작된 충청도 서해안, 각 교파의 선교의 각축장이었던 충청도 서해안, 구세군 광풍이 불었던 충청도 서해안 등 네 가지 측면으로 조명했다.
  
첫째로, 기독교 선교의 최초 접촉지였던 충청도 서해안에서 고 교수는 기독교 선교의 최초접촉지라는 것은 1816년 최초로 킹 제임스 버전(King James Version, 흠정역)으로 추정되는 성경이 서천 마량진에서 전래되었다는 것과 1832년 개신교 선교사로서 최초로 칼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ützlaff) 선교사가 충남 보령의 섬들을 방문했다는 두 가지라고 설명했다.

 

특히 칼 귀츨라프 선교사 일행이 충청도 서해안 지역을 방문을 할 때 보령의 섬들을 방문할 때 최종적으로 정박했던 도서가 고대도냐 아니면 원산도냐로 양분되어 지금까지 평행선을 긋고 있다고 강조하며 이는 기독교 최초의 선교지라는 타이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고대도를 주장하는 이들은 조선측 자료를, 원산도를 주장하는 이들은 서양측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고 했다. 칼 귀츨라프 선교사 일행은 보령의 섬들뿐만 아니라 1832년 8월 7일 서산 부석면 간월도리 및 서산 부석면 창리까지 방문했다는 것을 언급하며 서산이 기독교 선교의 최초 접촉지 중 일부였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할 있다고 강조했다.

 


  
둘째로, 자생적인 신앙공동체로 시작된 충청도 서해안에서는 일찍이 서울에서 기독교인이 되었던 류제가 1895년에서 1896년 면천 군수로 재직할 당시에 면천지역에 자생적인 신앙공동체가 생성되었을 개연성을 가지고 있고, 덕산에서도 먼천 군수를 사임한 류제가 1897년 이전 세운 대천교회와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을 지낸 조원식이 1897년 세운 수촌교회라는 자생적인 신앙공동체가 생성된 가운데 관 주도의 덕산 기독교인 박해 사건이 발생하여 덕산 지역에 존립하고 있었던 자생적인 신앙공동체가 약화된 가운데 1898년 이전에 해미에서도 새롭게 자생적인 신앙공동체가 생성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해미에 자생적인 신앙공동체가 생성된 직후인 1898년 스크랜턴 선교사(W. B. Scranton), 스크랜턴 대부인(M. F. Scranton), 홍주 출신의 이경숙 전도부인 등이 덕산과 해미를 방문하였고, 그 후 서원보(W. C. Swearer)선교사가 1899년에 충청도 서해안 지역을 선교 순회를 하였을 개연성이 농후하고, 1901년에는 홍주성을 거쳐 해미까지 선교 순회를 감행한 가운데 충청도 선교 사업의 중심지가 해미라고 소개한 바 있다고 전했다. 그만큼 서산을 비롯한 충청도 서해안 지역은 복음 수용에 있어서 주체적이었다고 역사적으로 평가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셋째로, 각 교파 선교의 각축장이었던 충청도 서해안에서는 흔히 충청도 서해안 지역은 감리교회 선교지역이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지만 1907년 남 장로회와 1909년 북 장로회와의 선교지 분할 협정을 맺기 전에는 미 감리회, 북 장로회, 남장로회 등 각 교파 선교의 각축장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서는 맨먼저 미 감리회 선교가 이루어진 가운데 북 장로회 청주 신대교회 이춘성 전도부인도 해미를 비롯한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까지 왕래하며 전도 활동을 하였고, 북 장로회 민노아(F. S. Miller)선교사도 1905년 온양 거쳐 홍성까지 다녀갔으며. 남 장로회도 보령 이하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서 일찍이 선교 활동을 해 온 가운데 1905년 부위렴(W. F. Bull) 선교사는 당진 난지도까지 다녀갔다.

 

지난 1905년 대난지도에 샤프(R. A. Sharp)라는 선교사가 왔다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지만 실상 1905년에 당진에 다녀간 이는 부위렴 선교사였다고 언급했다. 그런 중 1907년 남 장로회와의 선교지 분할 협정이 이루어져 보령 이하 6개 군을 남 장로회에 양도하고 보령 이상은 미 감리회 선교 지역이 되었고 또 1909년 북 장로회와의 선교지 분할 협정을 통해 충남 지역은 미 감리회 선교 지역이 된 가운데 북 장로회에서는 당시 홍주(현 홍성제일감리교회)신앙공동체를 비롯한 북 장로회에 속한 신앙공동체를 이관하였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산 지역에서 가장 먼저 파송된 전도인은 1904년 홍승하의 동생 홍승문이었지만 그의 구체적인 전도 활동은 드러나지 않은 반면, 1927년 6월 15일자 〈동아일보〉에 보면  정작 서산에서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전도인은 1905년 파송된 서산 출신의 노병목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아마도 서산 출신의 인천 지역 최초의 전도인인 노병일이지 않을까 추정된다고 설명하며 추정컨대 인척일 개연성도 있다고 첨언했다. 

 

또 서산 시내에서 생성된 가장 오래된 신앙공동체는 서산군 오산면 장동리에 존재하였던 신촌 예배당이었다고 설명했다.1907년 10월 5일자〈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서산 야소교회에 관한 기사는 바로 신촌 예배당과 관련되어 있으며 1908년 탁사 최병헌 목사가 순종 황제의 명으로 충남 지역 선유 위원으로 활동할 때 바로 신촌 예배당의 지도자인 임봉익을 만나기도 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서산지역에서 최초로 세워졌다고 알려져 있는 서산제일교회는〈조선총독부관보〉에 의거해 보면 1917년 이전에 설립되었다는 것은 확인이 되나 정확히 언제 설립되었는지는 연구 과제임을 강조했다. 1917년 당시 동문리 미감리교회당으로 불리는 이 교회의 담임자는 서산제일감리교회에서 역대 담임자로 언급되어 있지 않은 박원백 목사였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안면도에서 가장 먼저 활동한 전도인이  노병목의 인척인 서산 출신 양치옥으로 알려져 왔으나 공식적으로 가장 먼저 안면도에서 활동한 전도인은 송환수였다고 언급했다. 

 

넷째로, 구세군 광풍이 불었던 충청도 서해안에서는 1908년 한국에 구세군이 전래된 가운데 1909년에는 〈구세신문〉 1909년 7월 창간호에 게재되고 있는 바 충청도 서해안 지역을 비롯한 충남 지역에서 구세군 광풍이 불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렇게 광풍이 불게 된 요인은 구세군이 군대식 조직이라는 특성과 함께 배일사상과 독립정신을 강조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하면서 당시 구세군 입교는 신앙적인 측면보다는 민족적인 측면이 강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 중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갈산 영문은 다른 이설도 전해오고 있지만 1909년 7월 28일자 〈대한매일신보〉에 보면 갈산 김씨, 갈뫼 김씨, 옷머리 김씨인 신 안동 김씨 문중에서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며 문중에서 교회를 설립한 것은 특이한 사례라는 점을 언급했다. 이처럼 김씨 문중을 중심으로  200여명이 집단 입교했는데, 그 가운데는 훗날 대종교인으로 알려진 김좌진 역시 당시 구세군으로 입교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고 교수는  지금은 육지가 고속도로이지만 선교 초기에는 바다가 고속도로였다고 하면서 1909년 구세군 선교사들인 밀톤 기관(Ensign Milton)이나 허가두 정령(Colonel Robert Hoggard)이 해로를 통해 서산와 해미를 다녀갔다고 설명했다. 1909년 7월 28일자 〈대한민보〉에 보면 서산에도 구세군 광풍이 불었다는 기사가 게재되었다고 하면서 현재 서태안지역에서 존립하고 있는 서산 음암영문이나 태안영문,  소멸된 온석영문이나 당하리 영문은 1910년 이후에 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909년 구세군 광풍이 불 때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기독교 역사속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서산 지역에 이 학술세미나가 지향하는 바 목회자이면서 아동 문학가들인 이태선 ․ 윤춘병 아동문학관이 건립되기를 한 마음으로 염원하면서 뜻깊은 행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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