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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박기성 칼럼] 가장 좋은 것은 최후에 얻습니다

대전주님의교회 담임목사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존 번연(John Bunyan)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크리스찬이 ‘멸망의 도시’에서 ‘시온산’으로 가는 길에 설명자를 만납니다. 설명자가 크리스찬의 손을 잡고 작은 방으로 데려갑니다. 그곳에는 두 아이가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큰 아이의 이름은 열광(熱狂)이고, 다른 아이의 이름은 인내(忍耐)입니다.

 

열광은 매우 불만인 것처럼 보였지만, 인내는 몹시 조용했습니다. 크리스찬이 물었습니다. “열광이 어째서 불만입니까?” 설명자가 대답했습니다. “아이들의 아버지께서 가장 좋은 것은 내년 초에 줄 터이니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는데, 큰 애는 지금 모두 갖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내는 기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열광은 현세의 사람을 나타냅니다. 열광은 지금, 즉 현세에서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런데 바람대로 자신의 손에 그 바라는 것이 쥐어지지 않고, 눈에 보여 지지 않으니 불만스러운 것입니다.

 

그들의 행복의 기준은 오로지 ‘지금, 현세’, 그리고 당장 눈에 보여 지는 ‘물질’에만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설령 바라던 것을 얻었다 하더라도 손에 쥐고 있던 것, 눈앞에 있던 것이 사라지는 순간 그의 행복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아이, 즉 인내는 내세의 사람을 상징합니다. 이 사람은 현세의 것보다 내세에 주어질 영광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내년에 주겠다”는 아버지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오늘을 불안해하지 않고 평안히 지낼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과 불편함도 기꺼이 이겨낼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 8:18). 스데반이 그랬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돌에 맞아 죽으면서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돌에 맞는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세계를 보았습니다(행 7:55).

 

그런데 열광과 같은 많은 사람들은 인내와 같은 사람을 비웃습니다. 그들의 눈에 인내와 같은 사람은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천로역정>에서 설명자는 크리스찬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이 세상의 것은 곧 사라지지만, 내세의 영광은 절대로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열광은 좋은 것을 먼저 얻었다고 해서 인내를 비웃을 이유는 없습니다.”바울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오늘’만 사는 사람과 ‘내일’을 소망하는 사람, ‘땅’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과 땅에 발을 딛고서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의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천로역정> 속 설명자의 말대로 이 땅의 수많은 ‘열광들’은 ‘인내’가 “가장 좋은 것을 최후에 얻게 됨”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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