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참새의 짹짹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처음에는 두세 마리가 지저귀는 듯 하더니 어느 순간 숫자를 알 수 없는 참새들이 합창을 합니다. 참으로 부지런한 녀석들입니다. 하지만 고(故) 이어령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예민해서라고 합니다. 처음에 어둠 속에서 새벽의 미세한 빛이 눈꺼풀로 스며들 때 그것을 느낀 예민한 녀석이 먼저 짹짹 소리를 내면 다른 녀석들도 맞장구를 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무엇이든지 먼저 실행하는 선구자(先驅者)가 있습니다. 나머지는 눈치를 보다가 선구자를 따라 맞장구를 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공연장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오페라 가수가 노래를 한 곡 부르고 나면 언제 박수를 쳐야 할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먼저 박수를 치면 그 박수 소리를 듣고 몇 사람이 박수를 칩니다. 마침내 객석의 모든 사람들이 따라서 박수를 칩니다. 심지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말입니다.
교회에도 그런 선구자가 필요합니다. 교회라고 해서 모두 은혜로운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눈치를 보며 관망할 때 먼저 나서서 박수를 쳐 주는 사람이 있어야 교회도 활기가 넘치게 됩니다. 이제 갓 목회를 시작하게 된 아들이 최근 몇 곳의 교회에서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A교회에서는 성도들이 큰 소리로 ‘아멘’을 외치며 설교에 집중해 주었습니다. 새내기 설교자를 격려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진짜 은혜가 되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성도가 ‘아멘’으로 설교에 화답하니 다른 성도들도 함께 ‘아멘’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B교회의 성도들은 전혀 ‘아멘’을 외치지 않았습니다. 설교의 시작부터 끝까지 무표정과 무미동(無微動)이었으니 새내기 설교자가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어느 공동체든 마찬가지겠지만, 교회에는 먼저 반응해 주는 선구자가 꼭 필요합니다. 여기서 선구자라 함은 좋은 의미의 선동자(煽動者)를 말합니다. 그래야 눈치만 보던 다른 사람들이 용기를 얻기 때문입니다. 도마가 그런 사람입니다. 우리는 도마를 의심 많고 이성적인 사람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선동가이기도 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님이 “유대로 다시 가자”고 말씀 하시자 제자들은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합니까?”라며 만류합니다. 그 때에 도마는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 11:16)라며 다른 제자들을 설득합니다. 그는 합리적인 사람이기도 했지만, 거룩한 선동가이기도 했던 겁니다.
모두가 눈치를 볼 때에 먼저 박수를 쳐주는 거룩한 선동가! 교회에는 꼭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