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너무 열심히 준비하려고 하지 마. 그냥 설렁설렁해. 열심히 준비하면 못 알아듣고, 설렁설렁해야 오히려 은혜를 받는다니까” A목사님의 말씀입니다. 설교를 열심히 준비한 날보다 바빠서 설렁설렁 준비한 날에 도리어 성도들이 ‘은혜 받았다’고 하더라며 하신 말씀입니다. 그분은 매사를 대충하지 않는 분입니다. 설교준비 또한 꽤 열심히 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열심히 준비한 설교보다 설렁설렁 준비한 설교에 더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소연하듯 내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A목사님의 말씀이 조금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설교를 하려거든 차라리 설교를 하지 말어” 이 말은 B목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설교준비를 완벽하게 하지 않고 대충 준비해서 하려거든 차라리 설교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B목사님의 말씀도 공감이 되었습니다. 설교를 충분히 준비했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는 강단에 선 설교자의 양심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등에 식은 땀이 흐릅니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설교자로서 두 분 목사님의 말씀 모두 공감이 되기에 때로는 헛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존 번연(John Bunyan)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크리스찬이 ‘멸망의 도시’에서 ‘시온산’으로 가는 길에 설명자를 만납니다. 설명자가 크리스찬의 손을 잡고 작은 방으로 데려갑니다. 그곳에는 두 아이가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큰 아이의 이름은 열광(熱狂)이고, 다른 아이의 이름은 인내(忍耐)입니다. 열광은 매우 불만인 것처럼 보였지만, 인내는 몹시 조용했습니다. 크리스찬이 물었습니다. “열광이 어째서 불만입니까?” 설명자가 대답했습니다. “아이들의 아버지께서 가장 좋은 것은 내년 초에 줄 터이니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는데, 큰 애는 지금 모두 갖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내는 기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열광은 현세의 사람을 나타냅니다. 열광은 지금, 즉 현세에서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런데 바람대로 자신의 손에 그 바라는 것이 쥐어지지 않고, 눈에 보여 지지 않으니 불만스러운 것입니다. 그들의 행복의 기준은 오로지 ‘지금, 현세’, 그리고 당장 눈에 보여 지는 ‘물질’에만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설령 바라던 것을 얻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김요셉 목사는 극동방송 이사장이신 김장환 목사님의 장남입니다. 그가 어렸을 때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목사가 되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교회에 갈 때마다 사람들은 “요셉아, 아버지처럼 훌륭한 목사가 되어야지.”라고 말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야 했던 이 말 때문에 그는 너무 괴로웠습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 김장환 목사님만큼 훌륭한 목사가 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예 목사가 되는 것을 시도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 김장환 목사님이 그를 만나러 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서먹서먹하게 하룻밤을 같이 보내야 했습니다. 그가 밤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일어나 보니, 화장실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화장실 안에 계신가 보다 생각하고, 밖에서 한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화장실 문을 슬며시 밀어 보았습니다. 변기 뚜껑에 두툼한 타월 2개가 덮여 있고, 그 위에 성경책이 올려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변기 앞에 무릎을 꿇고 계셨습니다. 그때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습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참새의 짹짹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처음에는 두세 마리가 지저귀는 듯 하더니 어느 순간 숫자를 알 수 없는 참새들이 합창을 합니다. 참으로 부지런한 녀석들입니다. 하지만 고(故) 이어령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예민해서라고 합니다. 처음에 어둠 속에서 새벽의 미세한 빛이 눈꺼풀로 스며들 때 그것을 느낀 예민한 녀석이 먼저 짹짹 소리를 내면 다른 녀석들도 맞장구를 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무엇이든지 먼저 실행하는 선구자(先驅者)가 있습니다. 나머지는 눈치를 보다가 선구자를 따라 맞장구를 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공연장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오페라 가수가 노래를 한 곡 부르고 나면 언제 박수를 쳐야 할지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먼저 박수를 치면 그 박수 소리를 듣고 몇 사람이 박수를 칩니다. 마침내 객석의 모든 사람들이 따라서 박수를 칩니다. 심지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말입니다. 교회에도 그런 선구자가 필요합니다. 교회라고 해서 모두 은혜로운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눈치를 보며 관망할 때 먼저 나서서 박수를 쳐 주는 사람이 있어야 교회도 활기가 넘치게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몇 년 전의 일입니다. 미술품 경매사 K옥션에서 이상한 경매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물건이 아니라 당시 유명세를 누렸던 혜민 스님과의 저녁 식사권에 대한 경매였습니다. 40번의 경합 끝에 1000만원에 낙찰이 되었습니다. 낙찰자는 모 건설회사의 이 아무개 회장이었습니다. 그는 서울의 모 레스토랑에서 있을 혜민 스님과의 저녁 식사를 위해 무려 1000만원을 낸 것입니다. 물론 그 돈은 저소득층 아동들을 위해 쓰여졌다고는 하지만, 이 회장은 혜민 스님과 대화를 나누며 먹는 한 끼 식사를 위해 매우 비싼 값을 치루었습니다. 그런데 1000만원은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한 끼 식사를 하기에는 턱없는 액수입니다. 바로 투자의 귀재로 유명한 워런 버핏과의 식사입니다. 지난 6월 12일부터 17일까지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권에 대한 경매가 있었습니다. 최종 낙찰가는 무려 한화 246억 원이었습니다. 한 끼 식사로 1만원을 지출할 때에도 손이 떨리는 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액수입니다. 그런데도 경쟁이 치열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왜 이런 엄청난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워런 버핏과 한 끼의 식사를 하려고 하는 걸까요? 그들은 단지 한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특히 그가 극적으로 감옥에서 나와 파라오의 꿈을 해석해 준 후 이집트의 총리가 되는 장면, 그를 상인들에게 팔아넘긴 형들에게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 넘긴 그 아우 요셉입니다.”라며 신분을 밝힐 때의 장면은 소름을 돋게 합니다. 요셉의 생애는 참으로 억울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 속에서 요셉이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 하나님께 원망을 했다는 기록을 단 한 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수많은 마음의 상처와 억울함으로 밤잠을 설치며 원망할 법도 한데 말입니다. 분명 그를 굳건하게 붙잡아준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고, 용서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7-8)는 말은 그런 믿음 없이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닙니다. 내 성경책 어느 페이지 사이에는 네잎 클로버가 끼워져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입니다. 내 눈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드디어 지방선거가 끝이 났습니다. 어느 후보가 당선이 되었든 시원한 마음이 듭니다. 선거운동기간에 폭탄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여론조사기관의 전화, 각 후보 선거캠프에서 보내는 문자 메시지와 전화 홍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교단의 감독 선거와 맞물며 가끔은 휴대폰을 꺼놓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도 선거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투표방식이 아닌 제비뽑기입니다. 사람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선택에 맡긴 방식(행 1:24)입니다. 이 방식은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아를 선택할 때에 마지막으로 등장합니다. 그 다음의 선거는 소외된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을 돕기 위해 7명의 일꾼을 뽑을 때 등장합니다(행 6:1-6). 이 때의 선거 방식은 성경에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제비뽑기는 아닌 듯합니다. 이 때 뽑힌 7명의 일꾼을 우리는 흔히 일곱 집사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들을 ‘집사’라고 호칭하지 않았습니다. 한글개정판에서 이들에 대하여 ‘집사’(행 21:8)라고 호칭한 것은 사실 원문에는 없는 단어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교회의 지도자나 사역자들을 대개 ‘일꾼’으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분명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창고처럼 사용하는 방이 하나 있습니다. 오랜만에 그 방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한쪽 구석에 하얗게 곰팡이 꽃이 핀 호박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깜짝 놀라 넘어질 뻔 했습니다. 지난 추수감사절에 장식을 했던 늙은 호박 중에 일부는 교인들과 함께 죽을 쑤어 먹고 남은 것을 이곳에 두었는데 그것이 부패한 것입니다. 썩은 호박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밑에 받쳐 두었던 신문째 들어 화단에 묻었습니다. 발효와 부패는 한끗 차이입니다. 둘 다 유기물에 대한 미생물의 분해작용을 일컫습니다. 하지만 발효된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먹을 수 있게 하고, 부패된 것은 먹을 수 없게 만듭니다. 발효된 것은 사람을 이롭게 하고, 부패된 것은 해롭게 합니다. 그래서 발효된 것을 “잘 익었다”라고 말하고, 부패된 것을 “썩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고인이 된 이어령 교수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을 발효와 결부시켜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포도주가 되는 것을 “포도 껍질에 붙어 있는 효모균에 의해 불필요한 균들이 퇴치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포도주는 악이 전부 퇴치된, 순수한 효모에 의해서 깨끗해진 술인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기생충학자 서민 교수의 책에서 ‘창형흡충’이라는 기생충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형흡충이라는 이름은 머리 부분이 창처럼 뾰족한 모양이라서 붙여졌습니다. 크기는 매우 작아서 1mm에 불과합니다. 개미에 있는 창형흡충은 소가 종숙주입니다. 그래서 이 기생충은 어떻게 해서든 소의 몸 안으로 들어가야 성충이 되어 알을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는 개미를 먹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형흡충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세웠습니다. 개미로 하여금 소가 즐겨 먹는 풀 위로 올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작전을 위해 창형흡충의 유충 한 마리가 개미의 뇌로 들어가 개미의 행동을 조종하기 시작합니다. 개미는 무언가에 홀린 듯 풀로 올라가고, 거기서 반나절 이상 매달려 있으면서 소가 먹어 주기만을 기다립니다. 개미가 소한테 먹히면 이 작전의 일등공신인 뇌에 있는 유충은 죽지만, 개미 몸 안에 있던 다른 유충들은 성충이 되어 죽은 유충의 몫까지 알을 낳습니다. 숙주를 조종하는 또 다른 기생충이 있습니다. ‘톡소포자충’입니다. 주로 쥐에 사는 이 기생충의 종숙주는 고양이입니다. 톡소포자충은 쥐의 뇌 중 공포 반응을 조절하는 부위에 기생하여,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정신분석가 리주토(Ana-maria Rizzuto)는 <살아있는 신의 탄생>에서 하나님을 아이들이 부모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 낸 일종의 ‘중간대상(transitional object)’이라고 주장합니다. ‘중간대상’이란 유아가 발달과정에서 애착을 갖게 되는 어떤 소유물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곰 인형, 장난감, 인공 젖꼭지 등이 중간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중간대상은 엄마의 대용이 되어, 엄마와의 분리에서 오는 불안으로부터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주는 기능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중간대상’이라고 표현하는 리주토의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부모를 대체하는 대상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에 리주토의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도리어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부모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표상(representation)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 가정에서의 부모의 행동은 굳이 기독교 교육학자 루이스 쉐릴(Lewis Sherrill)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녀의 하나님 개념 형성에 매우 중요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매우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에게서 성장한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어게인 마이 라이프>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주인공 김희우는 법과 정의 앞에 타협 없는 젊은 검사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어떤 이에게는 껄끄러운 존재입니다. 결국 김희우는 추앙받는 정치인의 가면을 쓴 거대 악 조태섭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가 15년의 세월을 회귀하여 살아 돌아옵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를 지킬 수 있도록 더 강해져야 한다. 힘이 있어야 정의를 실현할 수 있으니까” 모든 사람이 “정의는 실현되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현실 속에서 정의는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것이지,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림 속의 이상향 같은 것일 뿐입니다. 정의만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힘과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역할도 주지 않습니다. 그저 가진 사람들끼리의 나눠먹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도 그녀의 또 다른 책 <리더 이야기>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권력이 없으면 역할도 없는 법이다.” 이것을 일찍부터 간파한 캄비세스 1세는 그의 아들 키루스 2세(한글 성경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다가 오래 전에 설치해 놓은 중고 직거래 마켓인 당○마켓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마켓에 올라온 중고물건들을 생각 없이 검색해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빈 술병 하나가 무려 18만원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내용물이 들어있는 것도 아닌 그저 빈 술병일 뿐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 병과 관련된 술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습니다.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무려 500만원에 팔리는 술이었습니다. 술값이 비싸니 공병(空甁)조차도 비싼 모양입니다. 바울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보배를 담은 질그릇(고후 4:6-7)’입니다. 개신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사로 평가받고 있는 존 파이퍼는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의 본질적인 가치와 아름다움과 위대하심과 수많은 온전하심이 외적으로 비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속성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영광’이라고 정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영광이 인간에게서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히브리어로 ‘쉐키나(Shekinah)’라고 부르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본래 쉐키나는 ‘거주(dwelling)’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