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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박기성 칼럼] 언성을 높이는 목사

대전주님의교회 담임목사

 

전국연합뉴스 박기성 기자 | 모 정당의 대통령 후보 토론회가 끝난 후 후보들 중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며 충돌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언성을 높인 것은 상대의 공격이 너무 과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기분이 상한 것입니다.

 

하지만 기분이 상할 때만 언성을 높이는 것은 아닙니다. 몹시 사랑하기 때문에 언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바울과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깊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할 수만 있었다면 그들의 “눈이라도 빼어서”(갈 4:15) 바울에게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는 ‘다른 복음’(갈 1:6)이 들어왔습니다.

 

성도들 중에는 ‘다른 복음’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언성’(갈 4:20)을 높이겠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을 향해 ‘언성’을 높이려 마음을 먹은 것은 그들을 사랑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볼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언성을 높여서라도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랐습니다.

 

언성을 높여서라도 그들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갈 4:19)이 이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다시 ‘해산의 고통’(갈 4:19)을 겪기로 결심했습니다.

 

목사는 성도들에게 말의 절제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언성을 높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의 전제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성도들에게 언성을 높여야 할 때조차도 언성을 높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해산의 고통’을 겪으면서라도 언성을 높여 그들로 하여금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저는 사실 성도들에게 언성을 높이지 못합니다. 혹여나 그들이 시험에 들어 넘어질까 두려워서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반대로 성도들을 대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성도들을 진실로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언성을 높여야 할 때에 언성을 높일 줄 아는 목사가 좋은 목사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마음이 약해서인지, 아니면 사랑함이 부족해서인지 헛갈리지만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오늘도 한 없이 부족함만을 깨닫게 되며, 어쩔 수 없이 주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주여, 제게 진실한 사랑을 충만히 채워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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