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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박기성 칼럼] '뒤로 호박씨 깐다.'

 

전국연합뉴스 박기성 기자 | 속담에 “뒤로 호박씨 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뒤’는 ‘항문’을 의미합니다. 예전 어른들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라는 말을 “뒷간에 다녀오겠다.”고 말한 것을 기억할 겁니다. 그런데 호박씨를 어떻게 ‘뒤’로 깔 수 있을까요?

 

옛날에 매우 가난한 선비가 살았다고 합니다. 선비는 글공부에만 매달리고, 살림은 오로지 아내가 맡아서 꾸려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비가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와 문을 여니 아내가 무언가를 입에 넣으려다 황급히 뒤쪽으로 감추는 것이었습니다.

 

선비는 아내가 자기 몰래 혼자 음식을 먹으려고 한 것으로 오해하여 서운해 하며 뒤에 감춘 것이 무엇인지를 추궁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호박씨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기에 그것이라도 까먹으려고 집어 입에 넣어보니 쭉정이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는 눈물과 함께 용서를 구했고, 선비는 아내의 그 모습을 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함께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다가 본래의 눈물겨운 사연은 생략되고 “뒤로 호박씨 깐다”는 말만 전해졌다고 합니다. 또한 그 뜻도 “겉으로 얌전한 체, 어리석은 체하면서 남이 보지 않는 데에서나 속으로는 교활한 짓을 한다.”는 말로 의미변화(意味變化)가 된 것입니다.

 

성경에도 ‘뒤로 호박씨 깐 사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삼백 명의 용사로 미디안 군대를 무찌른 것으로 유명한 기드온입니다. 대승을 거둔 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며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삿 8:23)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기드온의 믿음에 감격합니다. 기드온이 그 다음에 한 말을 읽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흔쾌히 이 요청에 답한 무리들은 금 귀고리를 무려 ‘천칠백 세겔(약 20kg)’이나 가져왔습니다.

 

기드온은 그것으로 제사장이 입는‘에봇’을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습니다. 그 후로 사람들은 그 에봇을 섬기게 되었습니다(삿 8:27). 분명 사람들은 그 에봇을 섬기기 위해 언약궤가 있던 ‘실로’가 아닌 기드온이 사는 동네로 순례를 갔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기드온의 위상도 높아졌을 것입니다.

 

기드온은 앞에서는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상은 섬김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기드온의 아들 중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 되려했던 것도 우연이 아닌 듯합니다. 분명 기드온이 지어 주었을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의 뜻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기드온의 속내는 ‘왕’이 되고 싶어 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그 때는 진심이었으나, 마음이 바뀐 것일까요?

 

종교계나 정치계의 선거전이 시작되는 이 즈음, 왜 기드온이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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