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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박기성 칼럼] 같은 현상, 두 반응

대전주님의교회 담임목사

 

전국연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터키의 이스탄불은 참으로 신비한 도시입니다. 유럽과 아시아의 문명이 공존하고,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며,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명이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탄불 이전의 도시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이었습니다.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 후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에 의해 함락될 때까지 콘스탄티노플은 1100년이 넘는 동안 동로마제국의 수도이자 제국 그 자체였습니다.

 

성벽은 얼마나 튼튼했는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의 원인인 훈족의 아틸라조차도 이 성벽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그런 난공불락의 성벽이 메흐메트 2세에 의해서 함락된 것입니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기 며칠 전, 개기월식이 일어났습니다. 이 때는 오랜 공성전으로 양측 모두 지쳐 있을 때이고, 메흐메트도 휴전하자는 부하들의 요구에 갈등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월식이 일어난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월식은 대개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습니다. 월식을 바라본 콘스탄티노플의 시민들과 동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월식이 자신들을 향한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메흐메트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 징조를 거꾸로 받아들였습니다. 자신들이 아닌 적에게 닥친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에 메흐메트는 자신의 갈등을 멈추고 전열을 정비하여 마침내 1100년을 넘게 버텨온 난공불락의 성을 무너뜨리고 그 성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같은 현상을 바라보고 서로 상반된 해석을 한 결과입니다.

 

출애굽을 하던 이스라엘 자손이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을 때에, 모세는 가나안에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정탐을 하고 돌아온 12명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10명은 부정적인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은 적을 ‘거인’으로 보고 상대적으로 자신들을 ‘메뚜기’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니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보고였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르게 보고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그들은 이미 우리의 밥이오. 야훼께서 우리의 편이시니, 두려워하지 맙시다.”(민 14:9. 공동번역)라고 보고했습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서 한쪽은 적의 거인임에 놀라 자신들을 ‘메뚜기’로 표현했고, 또 다른 한쪽은 자신들의 ‘밥’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차이는 하나입니다.

 

한쪽은 육의 눈으로 현상을 본 것이고, 또 다른 한 쪽은 믿음의 눈으로 본 것입니다. 결국 약속의 땅 가나안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같은 현상임에도 그것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상을 보여 지는 대로 보는 눈이 아니라, 현상 너머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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