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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박기성 칼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대전주님의교회 담임목사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어게인 마이 라이프>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주인공 김희우는 법과 정의 앞에 타협 없는 젊은 검사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어떤 이에게는 껄끄러운 존재입니다.

 

결국 김희우는 추앙받는 정치인의 가면을 쓴 거대 악 조태섭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가 15년의 세월을 회귀하여 살아 돌아옵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를 지킬 수 있도록 더 강해져야 한다. 힘이 있어야 정의를 실현할 수 있으니까”

 

모든 사람이 “정의는 실현되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현실 속에서 정의는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것이지,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림 속의 이상향 같은 것일 뿐입니다. 

 

정의만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힘과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역할도 주지 않습니다. 그저 가진 사람들끼리의 나눠먹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도 그녀의 또 다른 책 <리더 이야기>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권력이 없으면 역할도 없는 법이다.”

 

이것을 일찍부터 간파한 캄비세스 1세는 그의 아들 키루스 2세(한글 성경에는 고레스로 번역됨)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해 주었습니다.


“네가 남들에게 선의를 베풀 수도 있고 피해를 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음을 보일 수 있을 때 네가 하는 말에도 힘이 실릴 것이다.”

 

현실이 그러함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하여 고개를 끄덕이기는 하지만, ‘참 재미없는 세상이구나!’라는 생각에 급 침울해 지기도 합니다. 재미없는 세상이니 희망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 어느 한 구석에는 여전히 ‘희망’이 남아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그 곳이 교회(기독교)이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하나님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을 더 기뻐하시기 때문(잠 21:3)입니다.

 

그런데 교회마저 힘 있는 사람만 우대받고 권력있는 사람에게만 역할이 주어진다면, 심지어 그것이 대물림된다면 어찌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공의와 정의를 외칠 수 있을까요?

 

정의가 뒤로 물리침이 되고 공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나타나지 못하는(사 59:14) 현실 속에서 이사야의 외침이 더욱 크게 들리는 듯 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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