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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박기성 칼럼] 나쁜 선생님

대전주님의교회

 

전국연합뉴스 박기성 기자 |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생활 복지사 선생님에게 큰 소리로 울먹이며 외칩니다.
“선생님은 나빠요. 나쁜 선생님이에요.”
“그래. 나는 나쁜 선생님이야. 그러니까 나는 계속해서 하게 할 거야!”

 

종종 자원봉사를 위해 방문하는 아동센터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임에도 여전히 한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아이에게 복지사 선생님이 매일 30분에서 1시간씩 한글 공부를 시킵니다.

 

나는 아동센터에 방문할 때마다 그들의 실랑이를 목격합니다. 아이는 필사적으로 선생님에게 대듭니다. 선생님도 필사적으로 한글 공부를 시킵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나쁜 선생님’이 됩니다.

 

그런데 그들의 관계는 묘합니다. 아이는 그렇게 하기 싫은 한글공부임에도 그 시간을 빼먹지 않습니다. 한글공부를 하고 싶다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공부가 시작되면 아이는 “힘들어요. 그만 할래요. 선생님은 나쁜 선생님이에요”를 반복합니다.

 

이 정도면 선생님도 “알았다. 그만 하자! 나도 지겹다”라고 할만도 한데, 선생님은 끝까지 아이에게 공부를 시킵니다. 그들을 매번 바라보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 그들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입니다. 

 

이 세상에는 때로 ‘나쁜 사람’이 필요합니다. 비록 욕을 먹기도 하고, 갖은 모욕을 당하는 경우가 있더라고 ‘나쁜 사람 노릇’을 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이 사회가 바르고 온전하게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예언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예언자들이 모두 같은 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 중에는 ‘참 예언자’로 평가되는 사람도 있고, ‘거짓 예언자’로 평가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 예언자’는 사람들에게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예언이 아니라, 듣기 거북한 예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거짓 예언자’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예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결코 사람들의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거짓 예언자’가 아닌 ‘참 예언자’를 보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보낸 ‘참 예언자’는 비록 사람들에게 ‘나쁜 예언자’로 취급받으면서 비방과 모욕, 심지어 죽임을 받기까지 자신들의 소임을 놓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울면서, 때로는 가슴을 치며, 때로는 자신의 출생을 한탄하면서 까지도 그들의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자신의 마음에 품고, 눈물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파토스(πάθος)’에 수천 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들도 감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세태에 대해 사람들은 도덕과 정의가 무너졌다고 한탄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나쁜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비방과 욕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나쁜 선생님’이 되기를 자처하는 진짜 사랑꾼들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때로는 위태로우면서도 아름답게 이어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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