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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

[박기성 칼럼] 호박죽과 떡국

대전주님의교회 담임목사

 

전국연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결혼을 하고 첫 설날이 다가올 즈음, 아내는 만두를 빚었습니다. 아내의 고향 강원도에서는 설날에 만두를 빚어 먹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내의 집에 처음 인사를 하러 갔을 때에도 설날 즈음이었습니다. 장모님과 아내, 그리고 처남댁이 거실에서 만두를 빚고 있었습니다. 강원도의 만두는 익산이 고향인 내 눈에는 영락없는 송편모양입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송편을 빚어보았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처가 식구들, 아니 처가의 여인들 틈에 끼어 송편모양의 만두를 빚었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만두빚기가 장모님의 점수를 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설날 점심에 익산의 아버지 집에는 친척들로 북적였습니다. 아버지가 며느리가 왔다며 점심에 같은 동네에 살고 계셨던 큰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의 식구들을 초청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손수 빚어 만든 만둣국을 상에 올렸습니다. 큰아버지의 감사기도가 끝나고 드디어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밥상 위에 있어야 할 만둣국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내 앞에만 놓여 있었습니다. 분명히 사람 수대로 상 위에 올려놓았는데 말입니다. 내가 의아해 할 때에 작은 아버지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만둣국 말고, 떡국 줘라!” 그렇게 모든 분들은 상 밑에 내려놓은 만둣국 대신에 밥이나 떡국을 선택하셨습니다.

 

차마 며느리가 만든 만둣국을 내려놓을 수 없으셨던 아버지와 남편인 나만 만둣국을 먹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때만 해도 전라도에서는 만둣국을 잘 먹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쌀로 만든 떡국만 먹었습니다. 강원도와는 달리 쌀이 풍부했기 때문입니다.

 

작년 설날을 앞둔 주일에, 아내는 여선교회 회장과 함께 떡국용 떡과 호박죽을 준비하여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주일이 다가오기 전 미리 떡 방앗간에 의뢰하여 떡을 준비하고, 토요일에는 아침부터 호박을 썰어 죽을 쑤었습니다. 정성껏 쑨 호박죽을 가정별로 그릇에 담아 두었다가, 다음날 주일예배 후 성도님들의 손에 미리 준비한 떡국 떡과 호박죽이 담긴 쇼핑백 하나씩을 들려 드렸습니다.

 

오늘 아침, 아내가 물었습니다. “올해는 어떻게 할까요?” 나는 그저 “글쎄요”라고만 대답하고 볼 일이 있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얼마 후에 아내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남 권사님과 통화함. 토요일에 도마시장 가서 떡국 떡 사고, 교회에서 호박죽 쑤어 가정에 나누어주기로 함.”

 

올 설날에도 호박죽과 함께 떡국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박죽과 계란 지단 고명이 올려 진 떡국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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