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때에는 사사(士師)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습니다. 사사 중에는 드보라(Deborah)라는 여자 사사가 있었습니다. 드보라가 바락(Barak)이라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군대 1만 명을 이끌고 다볼 산으로 가서 하솔의 장군 시스라가 이끄는 군대와 맞서 싸우라는 명령입니다. 하지만 바락은 드보라가 함께 가주지 않으면 자신도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강력한 적군에 대한 두려움을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의존하여 극복하려 했습니다. 결국 바락은 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였지만 진정한 승리의 영광은 얻지 못했습니다. 적장인 시스라를 죽인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장에서 도망쳐 나온 시스라가 피곤하여 잠든 사이에 헤벨의 아내 야엘(Yael)이 장막의 말뚝으로 시스라를 죽였습니다. 그 전쟁의 영광이 바락 장군이 아닌 야엘이라는 여인에게로 돌아간 것입니다(삿 4:9). 이러한 야엘의 용기를 본받고자 오늘날 이스라엘 방위군(IDF)중 여군의 이름을 <야엘(Yael)>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남녀모두 고등학교 졸업 후 군에 입대합니다. 남자는 32개월,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10월 26일 오후 6시. 경북 봉화군에 위치한 어느 아연광산의 갱도가 붕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지하 205미터에 두 명의 광부가 갇혔습니다. 한 명은 베테랑 광부인 작업반장이고, 또 한 명은 신참 광부였습니다. 작업반장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비닐을 주워 텐트를 치고, 나무를 모아 불을 지폈습니다. 그런 후 작업반장은 신참 광부 앞에 작은 물건 하나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저녁밥이다” 작업반장이 내민 것은 믹스커피였습니다. 그렇게 믹스커피 스틱 30개로 221시간을 버텼습니다. 마침내 두 광부는 구조대에 의해 무사히 구조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두 광부에게 물었습니다. “병원에서 회복되면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쌀밥에 소주 한 잔 하고 싶습니다.” “미역국과 콜라를 마시고 싶습니다.” 무너진 갱도에서 221시간 만에 살아 돌아온 그들의 소망은 지극히 소박한 것들이었습니다. 쌀밥과 미역국이 뭐라고 그리 먹고 싶었을까요? 우리는 우리가 누리며 사용하고 있는 평범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를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숨 쉴 수 있고, 볼 수 있고, 걸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신선한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가룟 유다는 오른손에 돈자루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판 댓가로 받은 돈이 들어있는 자루입니다. 이 그림 속 예수님의 모습과 가룟 유다의 모습에 관련된 일화는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모델이었던 19살의 젊은 청년이 7년 후에는 가룟 유다의 모델이 된 사연 말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가졌던 사람이 어떻게 가룟 유다의 얼굴을 대신한 모델이 될 정도로 악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바울과 테클라 행전>이라는 외경이 있습니다. 참고로 테클라는 바울의 제자이며 최초의 여자 순교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에 의하면, 바울은 키가 작고, 대머리이며, 안짱다리이고, 눈이 움푹 들어갔으며, 매부리코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외적으로는 전혀 흠모할 만한 사람이 못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바울의 외모를 묘사한 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온화한 인상을 주어서 때로는 사람으로, 때로는 천사로 보였다.” 외모는 볼품이 없었으나 천사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천사의 얼굴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지난 주일에는 예배 후 성도들과 함께 대전 근교에 있는 짜장면집에 갔었습니다. 단풍구경을 하고 싶다는 어느 성도님의 소원도 들어줄 겸 찾아간 식당입니다. 그런데 내가 중국집이 아닌 짜장면집이라고 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집에는 짬뽕도 없고 탕수육도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팔보채나 유산슬, 양장피도 없습니다. 중식당 메뉴 중 오직 짜장면만 파는 집입니다. 출입구에는 “짬뽕은 없어요”라는 문구가 간판대신 크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집 사장님은 뭐가 그리 당당한지 이 식당을 ‘가든’이라고 말합니다. 주차장 왼쪽에 있는 대형벽면에는 “가든이라고 뻔한 음식만 팔까요?”라는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짜장면이 맛이 있으면 얼마나 맛이 있기에 저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맛이 사뭇 기대가 되기도 했지만 대기 순서가 69번이어서 무려 1시간 30분이나 기다려야 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리 순서가 되어 출입문으로 향했습니다. 자동출입문에 쓰여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문만 통과하시면 손님집입니다”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주문한 짜장면이 나오고,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입에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매주 목요일에 봉사를 위해 찾아가는 지역아동센터가 있습니다. 그런데 목요일에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보건소에서 체육 강사가 방문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번 주에는 실내 피구를 했습니다. 강사는 노란 사각형 줄 안에 있는 아이들에게 목숨을 2개씩 부여했습니다. 너무 일찍 죽으면(?) 아이들이 재미를 잃을까봐 그런 것 같았습니다. 사각줄 밖에 있는 아이들은 공을 던져 줄 안에 있는 아이들을 맞추었습니다. 이때 체육 강사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이제 목숨이 하나 남았어!” 그러면 그 아이는 하나 남은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조금 전보다 더 열심히 공을 피하려 몸을 움직였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나는 ‘참 재미있는 놀이구나. 인생도 목숨이 두 개라면 ….’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10여 년 전에‘YOLO’라는 말이 등장하여 지금은 20~30대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표현하는 단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YOLO는 You only live once(한 번 뿐인 인생이야!)의 줄임말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살기보다는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며 최대한 즐겁게 살자는 삶의 방식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런 삶을 추구하는
UNCTAD의 ‘Investment Trends Monitor’ 지난 10월 20일, UNCTAD는 ‘22년 상반기 글로벌 FDI 동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보고서 ‘Investment Trends Monitor’를 공개했다. 관련 보고서는 통상 연간 2회(1월, 10월) 발행되는데, 10월에는 당해연도의 상반기 글로벌 FDI 현황을, 이듬해 1월에는 전년도 전체 글로벌 FDI 트렌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42번째 ‘Investment Trends Monitor’를 중심으로, ‘22년 상반기 글로벌 FDI 동향과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22년 2분기 들어서며 급격히 감소한 글로벌 FDI `22년 2분기 글로벌 FDI는 약 3,570억불로, 금년 1분기 대비 △31%, 전년 분기 평균 대비 7% 감소했다. 그런데 상반기 대비로는 ‘21년의 강력한 성장 모멘텀이 ’22년 1분기까지 지속된 영향으로 ‘22년 상반기 8,720억불을 기록, 전년 동기 7,680억불 대비 14% 증가했다. 그런데 UNCTAD는 ‘22년 상반기와 전년 상반기 대비 실적보다는, ‘22년 2분기 FDI가 금년 1분기 대비 감소한 점에 주목했다. 다시 말해서 ‘22년 1분기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내가 사는 동네 골목의 어느 집 담벼락에 담쟁이가 달라붙어 있습니다. 거의 매일 이 골목을 지나야 하기에 자연스레 담쟁이를 보게 됩니다. 그렇게 푸르던 담쟁이 잎에 어느 덧 단풍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내 저 잎들도 하나 둘 덩굴로부터 떨어져 나갈 테지요. 6년 전, 체코 프라하 성의 사슴계속 맞은편에 있는 왕가의 정원 담벼락에서 본 담쟁이는 지금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도종환 님의 <담쟁이>를 떠올리며 담벼락의 담쟁이를 꽤 긴 시간 동안 바라보았었습니다. 도종환은 이 시에서 담쟁이를 절망의 벽을 타고 넘어가는 희망자(希望者)로 노래했습니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특별한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 담쟁이는 같은 영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오 헨리(O. Henry)도 자신의 단편 <마지막 잎새>에서 심한 폐렴으로 삶의 의지를 잃은 존시에게 희망을 준 소재로 담쟁이를 사용했습니다. 무명의 여류 화가 존시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담쟁이덩굴에서 잎이 다 떨어지면 자신의 생명도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국내 모 갤러리가 지문 때문에 소송을 당했습니다. 이 갤러리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 도널드 저드의 조각품을 전시했는데, 지문 때문에 작품이 손상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저드 재단(Judd Foundation)의 주장이니 결과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문(指紋)은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그래서 아주 옛날부터 지문은 도장을 대신하여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을 지장(指章)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지문은 신분을 증명하는 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B.C. 18세기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시대에 계약문서에서 지문이 사용되었고, 중국 진나라 시대(B.C. 900-206년)에도 계약 문서에 지문이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8년 김신조 사건이 발생한 이후, 지문 날인이 포함된 주민등록증 발급이 법제화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성인이 아니더라도 실종을 대비해 지문을 등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문이 찍혀 있어야 할 곳이 계약서나 주민등록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목사이자 신학자인 싱클레어 퍼거슨에 의하면, 우리의 성경에도 자신의 지문이 찍혀 있어야 합니다.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의 제자 중 한 사람이 헌신 깁는 것을 업으로 하는 신기료 장수에게서 신발 한 켤레를 샀습니다. 신발값은 다음에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약속한 날이 되자 그는 돈을 가지고 신기료 장수에게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신기료 장수는 죽어 있었습니다. 그는 신발을 공짜로 갖게 되었다며 속으로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양심의 가책으로 매일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그는 돈을 들고 다른 사람이 주인이 된 그 제화점에 찾아가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가 죽었지만, 내게는 살아 있습니다.” 미국 인디언들은 양심을 ‘삼각형’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일 누군가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나쁜 행동을 하면 삼각형의 모서리 뾰족한 부분이 닿아서 아픔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반복되다보면 삼각형의 모서리가 달아 뭉그러져서, 또는 양심에 굳은살에 생겨 아픔을 크게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양심이 무디어졌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좋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에 느끼는 아픔의 크기만큼 양심도 건강하다는 의미입니다. 얼마 전에 동기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운전이 서툰 딸이 운전연습을 하다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며칠 전 드라마 <모범형사 2>가 종영되었습니다. 16부작 전편을 시청한 것은 아니지만 띄엄띄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편에서 형사 강도창의 대사는 가슴을 뭉클하게 해 주었습니다. 강도창은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은 후 병원을 찾습니다. 그곳에 억울하게 죽은 정희주의 할아버지가 입원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혼수상태인 채로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강도창은 “진범을 잡으면 뭐하냐”며 범인을 늦게 잡은 자신을 자책합니다. 그 옆에서 이 말을 듣던 이은혜가 “아저씨는 형사로서의 일을 다 하신 거예요”라며 위로합니다. 그러자 강도창이 울먹이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죽은 정희주 생각할 때마다 너무 아파서, 이렇게 아파하는 할아버지 생각할 때마다 내가 너무 아파서 미친 듯이 진범 잡으려고 뛰어다니 거다.” 할아버지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강도창의 진심이 전해진 듯 그가 병실을 떠난 뒤 감은 눈 너머로 조용히 눈물을 흘립니다. 강도창은 형사라는 직업의식만으로 진범을 잡으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피해자 가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낀 것입니다. 갈릴리의 나사렛 근처에 <나인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자주 방문하는 어느 교회의 앞마당에서 꽃대 하나를 보았습니다. 꽃대에는 붉은 빛을 띤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석산(石蒜)이라고도 불리는 꽃무릇입니다. 어떤 이는 상사화(相思花)라고도 부릅니다만, 사실 상사화와는 다른 꽃입니다. 굳이 둘의 관계를 말한다면 사촌 정도일 것입니다. 상사화는 봄에 잎이 나고 7~8월에 꽃을 피웁니다. 반면에 꽃무릇은 9월 중하순 경에 꽃을 먼저 핀 다음에 꽃이 지고 꽃대가 사그라질 때에 비로소 잎이 나옵니다. 그러니 꽃과 잎은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만날 수 없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인 게지요. 그래서 꽃말도 “슬픈 추억” 또는 “이룰 수 없는 사랑”입니다. 꽃말처럼 꽃무릇은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에 불도를 닦던 스님이 불공을 드리러 온 여인에게 반해 가슴앓이를 하다가 상사병으로 피를 토하며 죽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꽃무릇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꽃무릇은 사찰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사실은 꽃무릇의 뿌리에 방부제 성분이 있어서 탱화나 단청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지요. 작년 이 즈음에 아내의 생일을 기념할 겸 남쪽으로 바람을 쐬러 갔을 때에 영광 불갑산
전국통합뉴스 박기성 칼럼리스트 | 서양에서 들어온 파라하여 양파(洋파)입니다. 긴 장마를 지나면서 양파가 썩었습니다. 제대로 건조시키지 못한 채 보관한 탓입니다. 그래서 화단에 묻었습니다. 얼마 후 신기하게도 그곳에서 싹이 돋았습니다. 버림받은 양파들이 살아보겠다며 흙을 헤치고 생명을 밀어 올린 것입니다. 양파(히브리어 ‘베첼’)는 성경에 한 번 등장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행진하던 중 이집트에서 먹던 채소를 몹시 그리워하면서입니다(민 11:5). 그만큼 양파가 당시에도 대중적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에 동원된 노동자들에게 양파를 먹였다고 합니다. 양파에 피로회복과 스테미너 강화에 좋은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올림픽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양파즙을 먹였고, 로마의 검투사들에게도 양파를 먹게 했습니다. 종종 양파는 부정적인 의미와 관련하여 사용될 때가 있습니다. “까도 까도 나온다”라는 표현이 그런 예입니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거나 비리 등 좋지 못한 것들이 계속해서 밝혀질 때에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누군가로부터 “양파 같은